2008년 겨울, 윤종신의 열한번째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담배를 피우러 흡연실에 갔다가 열람실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매점앞 티비에 가요프로그램이 틀어져있었다. 윤종신은 언제나와 같이 청승맞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티비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던 여학우 둘은 윤종신을 보며 말했다.
"윤종신이 원래 가수였던 것은 알았지만, 개그맨 이미지가 강해서 저런 노래를 불러도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 말의 충격이 너무 커서 당시에 운영하던 블로그에 글까지 썼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어린 친구들이라 그러거니 하기엔 이미지란 정말 무섭다.

물론, 이것도 장난으로 쓴 글이겠지만 아무래도 씁쓸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장난이라도 윤종신의 음악이 저딴식으로 평가받을만큼 녹록한 것은 아니다. 윤종신은 9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몇안되는 싱어송라이터 중의 하나다.
90년대 감성이라는 말은 사실 좀 위험한 말이긴 하다. 80년대의 음악을 동시대에 들었던 사람은 90년대의 음악을 쓰레기 취급할지도 모르고, 지금 동시대의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은 10년쯤 후에 2000년대의 음악을 그리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윤종신의 음악은 다 비슷비슷한 이별노래일지언정 싸구려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최근의 노래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 가사에 있어서 하나의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마치 프로그램에 주제를 넣고, 키워드를 넣으면 주르륵 쏟아져 나오는 양산형 가사들같다는 생각이다. 조금 파격적이다 싶으면 말도 안되게 유치하다. 튀고 싶어서 안달난 가사들인데 그런 것이 또 먹히는 것을 보면 나도 늙었구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 내 발언을 공평치 못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앞서도 밝혔지만 위험한 말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하는 말이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윤종신의 음악이 내 생활을 지배한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윤종신의 청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같이 슬퍼하고 같이 아파한 기억이 없다. 그의 음악을 즐겨들은적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를 지배한 윤종신이 참여한 곡이 한 곡 있다.
중학교 때, 내가 참 싫어하던 친구가 015B의 러브송들만 테이프에 녹음해서 준적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싫어한 이유와 그렇게 싫어하던 친구가 왜 나에게 테잎을 녹음해 주었는지는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하자.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이 이야기는 나중의 소재거리로 써먹어야지. 어쨌든 그 테잎에 들어있던 '텅빈 거리에서'는 정말로 압도적이었다. 윤종신의 곡이 아니긴 하지만 애절한 표현력은 충분히 윤종신을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덧글
꽃꽂이1단 2010/07/06 00:19 # 답글
동전 두 개뿐...20원을 말하는 것이죠?
이제는 동네에선 공중전화 찾기도 힘들어졌네요.
로니우드 2010/07/06 03:20 #
네 20원맞을거예요. 제가 어릴때는 20원이었지요. 한창 삐삐 유행하고 음성메시지 남기던 시절이 70원이었죠.한솥도시락의 가장싼 콩나물 비빔밥인가? 그게 930원인 이유가 남은 70원으로 전화하라는 의미라고 예전에 한솥사장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이젠 공중전화 찾기조차 힘드네요.
박거성 2010/08/10 08:33 # 답글
동전 2개하니까 빨간색 공중전화가 생각나네요.이 노래 들을때마다 윤종신의 미성에 새삼 놀랍니다. 군대에서 변했다던데 참 안타까운 ㅠㅠ
그리고 언젠가 라디오스타에서 옥주현이었나요? 농담으로 한 것이겠지만 윤종신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에
발끈하기도 했고 요즘 애들이 그냥 예능인으로만 알고 있다는데 세월이 참 그만큼 흘렀단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씁쓸하네요.
로니우드 2010/08/11 20:55 #
전 지금 목소리가 예전의 미성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의 궁상맞은 목소리가 윤종신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요.^^
슬픈웃음 2010/08/27 15:41 # 삭제 답글
잘들었습니다.요즘 윤종신에 홀릭되어 있는데요..
90년대야 물론 잘 알던 가수지만 팬은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2000년 중반 이후에 그가 발표했던 노래가 너무 좋네요.
특히 '그대 없인 못살아' 아 ㅠㅠ..
근데 이 노래 검색해서 알게되고 재생을 해봤는데
처음에 누가 리메이크 했나 싶었네요 ;;;
이런 미성이었다니 ;;; 뮤비 질도 90년이었다고는 절대로 생각안될만큼 퀄리티가 높아서 ;;
아...진심 대단한 미성이네요.이정도 미성이면.....조모씨 전성기와 견줘도 될 듯.
근데 뭐 그대없인 못살아같은 노래도 요즘 음색으로 불러야 더 찌질이 궁상맞게 와닿을거 같긴 하네요.
미성으로 불렀으면 깨끗하긴 했겠지만 와닿진 않았을 듯 ;;
로니우드 2010/08/29 23:27 #
전 미성시절보다 지금 목소리가 더 좋아요.미성인 가수는 많지만, 궁상의 아이콘이 되는 가수는 흔치 않죠.
물론 그것이 예능에서 소비되는 윤종신의 이미지와 묘하게 화학작용을 일으켜 윤종신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 슬프지만요.
어쨌든 윤종신은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가수고 요즘 애들이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박혜연 2010/08/27 22:09 # 삭제 답글
지금 종신이아저씨는 예능계늦둥이로 활동하시니... 20년전만해도 고운 미성의 소유자셨는데...!
로니우드 2010/08/29 23:28 #
그러게요. 이런 미성의 소유자가.. 하하하.근데 위에도 말했지만 전 지금의 목소리가 더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