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그리고 야구 추억의골든팝쏭

거 야구 이야기 나온김에 좀 더 해야겠다. 블로그 다시 시작할 때, 음악 관련글만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역기 버릇은 개 못준다.

대부분의 부자가 그렇듯이 우리 부자도 그렇게 되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당신과 함께 장난도 많이치고, 대화도 많이하고 그랬는데 어느순간 서로를 생각하지만 친하지는 않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로는 목욕탕에 같이 가지 않은 시기가 바로 그 때일 것이다. 토요일이면 항상 아버지와 같이 목욕탕에가서 사우나를 하고, 때를 밀고, 중국집에가서 짜장면을 먹고, 300원을 받아 오락실에 갔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좀 크고는 동네 친구들과 목욕탕을 다니면서 아버지께서는 혼자 목욕탕에 가셨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부자는 무언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심지어는 여자를 보는 취향도 전혀 달라서, 아버지는 무조건 섹시한 여자를 좋아하시고, 나는 귀여운 여자를 좋아하지.(낄낄) 게다가 다른집 아이들처럼 아버지와 같이 공놀이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거든.

대신 아버지께서는 가끔 야구장엘 데려가 주셨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연고지의 개념이 무척 확고했기 때문에, 인천사람은 모두 태평양 돌핀스의 팬이었다. 가끔 OB의 팬이나 LG의 팬이 있으면 왕따까지는 아니어도 배척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아버지와 처음 야구장에 갔던 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우리 부자는 야구장에 갔고, 스포츠 광팬이신 아버지께서는 연신 소주를 들이키시며 야구만 보시고 나랑은 놀아주지 않으셨다. 처음 야구를 본 나는 그 특유의 지루함에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는 무척 가벼웠겠지만 불편하신 다리로 절룩거리시며 걸어가시던 아버지 등위의 감각이 생생하다.

누가 이겼냐는 내 물음에 아버지께서는 니가 중간에 잠이드는 바람에 태평양이 졌다고 대답해 주셨다. 어린 나에게 그 말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지금 같아선 누군가 나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따위는 뭐 가슴은 아프고 불편하겠지만 크게 게의치 않겠지만 그때는 나도 순수했거든. 그때부터 나는 태평양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열렬한 팬이되었다.

그러나 태평양은 참 못했다. 물론 암흑기시절의 롯데만큼이야 하겠느냐만은 그래도 리그 최하위권의 팀이었고, 언제나 졌던 기억밖에 없다. 태평양이 지면 질수록 나는 더욱 힘껏 응원했다. 그게 죄의식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 때의 나는 야구가 참 좋았다.

글쎄, 지금은 롯데의 팬이지만 내가 롯데를 좋아하는지 야구를 좋아하는지 좀 혼동스러운 경우가 있다. 가령 8회 1점차 리드 상황에서 임경완이 올라오는 역전패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그깟 공놀이 어찌되든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롯데 경기 말고 다른 경기는 별로 보고싶지 않다. 그런데, 태평양을 좋아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나는 롯데보다 야구가 좋은 것 같다. 사실 롯데를 좋아하게된 계기도, 현대가 수원가고 한참 야구 안보다가 어느순간 옛날 태평양같이 못하는 팀이 보여서 보니까 롯데여서 좋아한 거니까.

얼마전에 아버지께서 새로 오픈하신 편의점에 갔다. 빚을 많이 지시고 오픈하신터라 집에도 안들어오시고 편의점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는데, 오픈한지 두달이 넘었는데 딱 두 번 가봤다. 거리도 거리고, 차편도 차편이고, 시간도 없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단 둘이 할 것이 없다. 어색하다. 나쁜놈의 생각이지만 사실이다.

아버지와 만나면 항상 그렇다. 당신께서는 좋아하시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마시며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대화가 없다. 하는 대화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옆 고기집의 알바 아줌마가 예쁘네, 편의점 알바 중의 하나가 일을 못하네 하는 것이 전부다. 어떻게 살갑게 대해보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아버지도 어색해하시고 나도 어색하다.

얼마전에 아버지를 뵈러 가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주무시는 편의점 2층 방으로 올라가 TV를 켰다. 마침 야구가 할 시간이라 아버지께 물었다. 야구 하는 채널 있나요?

아버지는 말없이 채널을 돌려주셨지만, 스포츠 채널이 두개밖에 안나와서 MBC라이프에서 하던 롯데의 중계는 해주지 않았다. 내가 실망스러워하자 아버지는 물으셨다.

"뭐야, 너 롯데팬이냐? 하필이면 닮아도 그런것만 닮아서 나같이 못하는 팀만 응원하냐."

"아니 아버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롯데 요즘 잘해요. 더이상 이돼지와 여덟난장이가 아니라고요."

"그래봤자 우승전력은 아니잖아. 너도 인천놈인데 마음편하게 SK응원해 짜샤. 잘하는팀 응원하는게 속편하다."

"아버지는 SK응원하세요?"

"아니 넥센. 불쌍하잖아."

아이고 아버지...

역시 아버지와 아들은 닮는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아버지께서는 94년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시절과, 현대 시절을 그리워하셨다. 특히 현대 시절을 더 그리워하셨는데 이유를 여쭤봤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고 도원구장에 가봤더니 치어리더들이 팬티만 입고 다리를 쫙쫙 벌리며 응원을 하신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셨다. 역시 돈많은 구단이 좋긴 좋다며, 현대가 야구단을 포기할줄 몰랐다고 하셨다.

아이고 아버지...

지금까지 가난하단 이유로 엄마에게는 선물을 몇번 했지만, 아버지께는 선물 한번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아버지께서 겨울에 입으실 패딩하나를 샀는데, 마음에 들어하실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어머니에 대한 노래들은 참 많은데, 아버지를 노래한 곡은 별로 없는 것같다. 그렇다고 김경호의 아버지를 듣고싶지는 않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산울림의 노래나 들어야지.






추억의 골든 팝쏭 23.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덧글

  • 8비트 소년 2010/08/26 14:57 # 답글

    저는 89년 인천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태평양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그때도 김성근 감독이었지요. 94년 코시때는 당시 첨으로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7차전(!) 가려고 표예매했는데 4연패 해서 쪽팔렸던 기억이 납니다. 1차전 끝내기 홈런에 충격받아서 그 뒤로는 중계도 안봤던거 같아요.

    그렇게 패배가 더 많은 인천팀을 응원하다 보니 현대는 웬지 인천팀 같지가 않고 정이 안가더라구요. 그때쯤 군대를 가서 야구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기도 했고...... SK도 처음에는 님의 아버님처럼 못하는 팀이라 응원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다른 못하는 팀으로 응원팀을 갈아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또 몇몇 팀들에는 정이 가기는 하더라구요. 넥센은 가끔 인천야구 드립만 안치면 순수하게 응원해줄 수 있을텐데요. LG도 재밌게 하고.....
  • 로니우드 2010/08/26 23:52 #

    치치치치치, 칠차전!!!!!!!!

    그때 인천 아저씨들 쓰레기통 집어던지고 불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죠.
    넥센은 뭐 사실 인천드립은 모르겠는데, 태평양을 계승한건 맞다고 봐요. 그렇다고 SK가 인천야구의 직계가 아니다. 라는 말은 아니죠. 처음에는 SK가 인천야구가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팬들한테 참 열심히 하잖아요. 그럼 된거죠. 인천 팬에게 사랑받으면 그게 인천야구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SK를 좋아하진 않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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